스포츠 담긴 책장

베어타운
- 우리 사회와 스포츠세계의 축소판

베어타운

학생선수를 위한
추천도서

베어타운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
출판사 다산책방

스포츠 담긴 책장

베어타운

아마존 올해의 책 TOP3

대학교 독일문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비극에 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와 그때로 돌아가려는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은 굳이 비극을 써서 극을 올렸고, 그 이유는 희극이 극장에서의 즐거움에 그치지만, 비극은 관객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희극은 가상이 현실을 잊게 하는 환각적 희열을 주지만, 비극은 암울한 현실을 오히려 마주하게 함으로써 성찰적 태도를 끌어낸다는 말씀이었던 것 같다.(그렇다. 체육학도인 나는 놀랍게도 독어독문학을 부전공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관객은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는 이 비극적 순간에 오히려 근원적 공포를 초월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를 해소하면서 말이다. 전적으로 믿고 봤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도 비극의 효과일 것이다.(엔딩은…)

최근에 스카이캐슬만큼이나 빠져 보았던 책 한 권이 있다. 프레드릭 베크만의 ‘베어타운’. 2012년 이미 ‘오베라는 남자’로 미국 아마존 소설 분야 1위를 찍었던 베크만은 ‘베어타운’으로 돌아와 2017년 아마존 올해의 책 TOP3에 선정되는 영애를 또 한 번 누렸다. 최고의 소설이 스포츠를 소재로 하다니! 재밌는 소설 하나 찾고 있다면, 바로 이거다.

스카이캐슬만큼 다크한 이 소설 역시 오싹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일단 책을 한 번 펴면 이 비극적인 서사에 빠져서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마치 위험을 감지하고도 의문의 소리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이번에는 스포일러 없는 책 추천이다. 소설 읽는 즐거움을 훔치지 않기 위해 스토리 소개 없이 책 읽으며 떠올랐던 생각들, 감상을 적어본다. 단지, 작가가 책의 첫 장에 밝힌바,

“삼월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정의는 왜 정의가 되지 않는지

이 소설에서는 베어타운을 배경으로, 아이스하키를 중심으로 다양한 등장인물이 서사를 엮어간다. 더 정확히는 청소년 팀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과 역할이 그러하다. 나는 이 소설이 여러 입장과 역할이 그려내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베어타운이나 아이스하키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다양한 관계 속에서 정의가 어떻게 정의가 되지 않는지, 또 누군가에겐 정의가 왜 그렇게 불편한 것이 되는지를 이 소설은 보여준다. 그 불편한 사실 속에 독자를 빠트려버린다. 마치 학생선수의 자랑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그러한 것처럼(카뮈는 축구선수 출신으로,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베어타운’ 역시 이 사회의 부조리를 다루고 있다. 물론 ‘이방인’처럼 난해하진 않다.

화나는 부조리지만 각자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댓글 창에선 무 자르듯 쉽게도 갈라버리던 선과 악이 잔인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더 괴로운 건 시끄러운 우리나라 학생선수 신(Scene)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범죄자 코치만 잡아넣는다고, 무 자르듯 암 덩이만 도려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북유럽에서 이런 소설을 써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스포츠 리터러시(Sport Literacy), 몸에서의 탈출

올 초 한국 정부가 칼을 꺼내 들었다. 아무리 큰 사고가 터져도 절대 변하지 않았던 체육계를 드디어 개변해보고자 ‘스포츠혁신위원회’를 출범했다. 안타까운 건, 빙상계 비리나 체육계 미투 운동이 벌어졌을 때보다 혁신위 활동에 말과 탈이 더 많은 것 같다. 세상에 쉬운 혁신이 있으랴. 쉬우면 혁신할 것도 아니겠지.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자체 혁신을 기대하고는 근 20년이 그냥 흘러버렸다. 우리 사회에 고쳐야 할 질병이 많지만 체육계만큼 난치병도 없다. 

스포츠혁신위원회가 그리는 개혁안의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스포츠 리터러시(Sport Literacy)’. 혁신위가 2차 권고문에서 소개하기로는 ‘몸에 대한 자기 통제력을 습득하고 일생동안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를 만나 몸으로 해석하며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즉 문해력을 뜻하는 literacy를 몸으로 하는 Sport로 수식했으니 적절한 뜻으로 보이지만, 스포츠를 ‘몸’에 국한하기에 스포츠의 몸집은 지나치게 불어났다.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가 미치는 사회, 문화, 경제적 파급력을 생각하면 스포츠를 단순히 신체활동으로 여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서울대학교 최의창 교수는 2018년 1월에 이미 ‘스포츠 리터러시’란 책을 냈다. 그는 20년 전부터 스포츠를 몸(능소양)에서 탈출시켜 머리(지소양)과 마음(심소양)으로까지 확장하고자 노력했다. 스포츠는 몸으로 도달하는 영역뿐만 아니라 머리와 마음으로 도달하는 영역이 있다. 운동 기량만을 발휘하는 스포츠는 불균형하고 온전하지 못한 상태의 스포츠인 것이다.

사실, 최의창 교수의 스포츠론이 없으면 스포츠는 위험해진다. 지난 관행처럼 운동 기량이 스포츠의 전부라면, 스포츠를 둘러싼 좋지 않은 일들이 스포츠의 탓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일이야…우라지게 부끄러운 일이야. 그런데 나는 하키단이 걱정이 돼.
…사람들이 하키 탓을 할까봐 그게 걱정스러워.전부 하키가 뒤집어쓸까봐.”

-p.445

스포츠 리터러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한 만큼, 스포츠도 잘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마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성직자가 하는 말이 전부 성경에 쓰여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리터러시가 없으니 알 수 없고, 구원을 돈으로 사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세종대왕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글을 몰라 호소할 길이 없는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 읽고 쓸 줄 모르면 망가져도 알 길이 없고 억울해도 호소할 길이 없다.

스포츠를 잘 읽지(Know) 못하고 쓸(Use) 줄 모르면 스포츠도 망가지고 억울해질 수 있다. 흔히 구단의 맹목적 승리주의를 비판하지만, 베어타운의 하키 구단처럼 보통 경영진은 공동체의 이익과 같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승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의도가 선했을지라도 스포츠를 잘 모르는 경영은 망가지고 억울해지기 마련이다. 승패 이외에 스포츠의 이로운 가치는 점점 만들어내지 못하고, 학생선수의 전인적 성장도 뒷전에 놓이고 마는 것이다. 스포츠를 경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건강하게 스포츠를 즐기고 스포츠가 이로운 가치를 생산해내도록 관리하고 촉진하는 것 아닐까? 스포츠 경영인이 스포츠 리터러시가 없으면 스포츠는 승패만 남은 채 망가지기 마련이다. 경영에서뿐이랴. ‘베어타운’에서는 스포츠 리터러시의 결여를 여러 형태로 엿볼 수 있다.

관중에게 스포츠 리터러시가 없으면,
“관중들은 미묘한 차이는 모르고 천국과 지옥만 구분한다.
관중석에서 보면 천재와 천하에 쓸모없는 선수만 있을 뿐, 그중간은 없다.”
-p.84

부모에게 스포츠 리터러시가 없으면,
“부모도 몇 년에 걸쳐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희생하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붓기에
그들의 이성까지 마비가 된다.”
-p.156

무사고가 낳은 괴물(무낳괴)

언어는 사고의 집이다. 사고가 언어를 발명했지만, 다시 인간은 자신의 언어 능력이란 집 안에서 사고한다. 스포츠를 어디까지 읽고 쓸 줄 아느냐에 따라 스포츠에 대한 사고력도 제한되거나 확장된다. ‘베어타운’을 읽다 보면,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 마냥 정의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그들의 태도가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다. 그 지점에서는 마냥 그들을 비난할 수 없게 된다. 이 부조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모든 게 그놈의 아이스하키, 스포츠 탓일까? 스포츠만 없어지면 되는 걸까?

2차 세계대전 중 6백만 유대인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전쟁이 끝난 지 15년 만에 아르헨티나에서 붙잡혔다. 곧이어 열린 재판에서 그는 상급자의 지시를 성실히 수행했던 공무원에 불과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나치당 공무원으로서 본인의 업무를 게을리 했다면 오히려 그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을 통해 이렇게 보고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바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나치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

성실한 공무원을 악마로 만든 건 전체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의 결여, 즉 무사유가 악마를 만든 것이다. 자낳괴가 아니라 무낳괴(무사유가 낳은 괴물).

스포츠는 전체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만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강력하다. 그래서 망가지는 파괴력도 끔찍한 것이다. 선수 특기자 대입 비리가 발생하고, 코치의 권위로 선수를 성폭행하고, 심지어 학부모를 성폭행하고, 돈 많이 벌면서도 불법 도박이나 승부 조작에 가담하고, 금메달에 눈이 멀어 금지약물을 복용하고, 국가대표로 키우겠다며 학교도 안 보내는 일이 모두 스포츠 탓은 아니다.

생각 없이 스포츠를 하면 스포츠를 괴물로 만들 수 있다. 스포츠는 세상 모든 번뇌와 고민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효과가 있지만, 생각 없이 스포츠를 즐기려면 스포츠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온전한 스포츠는 무엇인가? 건강한 스포츠는 무엇인가? 스포츠에 대해 생각하면 스포츠를 읽고 쓸 줄 알게 되고, 읽고 쓸 줄 알면 생각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처럼.
사실 나도 20대 초반까지 이 모든 게 스포츠 탓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 존 우든(John Wooden)의 책(부드러운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을 접하면서 스포츠가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유발된 사고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스포츠에 대해 생각하고 스포츠를 더 잘 알아서(스포츠 리터러시를 습득해서) 몸과 승리에만 갇혀있는 스포츠를 구해내야 하지 않을까? 잘못하면 모든 잘못이 스포츠 탓이 될지도 모른다!

한나 아렌트의 스승(이자 전 남친)인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만이 존재를 문제 삼는다’고 했다. 인간만이 놀이를 문제 삼아 스포츠를 개발해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야 하듯이, 더 나은 스포츠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묻고, 생각해야 할 테다. 그놈의 스포츠.

“하키는 한심하고 별 의미 없는 스포츠다. 우리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거기에 몇 년의 세월을 바친다. 스포츠를 통해 누릴 수 있는 게 이해가 안 될 만큼 사소하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초월을 느끼는 몇 번의 순간들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불사르고 피를 흘리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인생에 또 뭐가 있을까?”

-p.205

글. 한국교육개발원 임한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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