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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선수를 격려해주고 있는 코치

최의창 교수의 코칭 칼럼

코칭은 호울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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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성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죠. 다른 동물들과는 차별되는, 인간만이 지닌 특징을 이야기할 때 가장 흔히 듣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사람됨을 드러내는 특징을 부각하는 다른 표현들로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존재), 호모 파베르(도구를 만드는 존재), 호모 에티구스(도덕성을 지닌 존재), 호모 릴리기우스(종교적인 존재), 호모 나렌스(서사적 존재) 등도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과는 여러 차원에서 차별화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부릅니다.

Coaching, Wholing

훈육과 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

이런 특성들은 인간이 물려받은 자질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남에 따라 누구나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라남에 따라 저절로 성숙하지는 않습니다. 훈육과 교육을 통해서만 성장하고 함양됩니다. 양적으로 향상되고 질적으로 성숙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타고나는 본성을 5가지로 요약합니다. 움직임과 감각을 가능케 하는 체성(Physicality)을 소유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지성(Intellectuality)을 소지하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감성(Emotionality)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선악을 구분하는 덕성(Morality)을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영원하고 궁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영성(Spirituality)을 품어 안고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본성(PIEMS)을 온전한 상태로 만드는 일이 바로, 온전한 사람(Whole Person)으로 성장시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지덕체가 균형 있게 발달하도록 하는 이 일을 ‘교육’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스포츠를 통해 그 일을 도모할 때에는 ‘체육교육’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전인교육(全人敎育)’은 이 다섯 가지 본성을 온전하게 지닌 상태로 만드는 노력을 말합니다. 체육을 통해 전인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체육전인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코칭이라는 활동이 바로 체육전인교육의 대표적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칭은 체육을 활용하는 본보기적 전인교육이라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본성(PIEMS)을 온전한 상태로 만드는 일이 바로, 온전한 사람(Whole Person)으로 성장시키는 일

다소 황당하거나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상대와 대결하는 경기를 잘하도록 운동기술을 연마시키는 일이 전인교육이라니 말입니다. 기껏해야 신체와 운동기능을 숙달시키는 일, 아무리 잘 봐주어도 전술 전략을 잘 짜는 일에 불과한 코칭인데 말이죠. 지성과 덕성, 그리고 감성과 영성까지 온전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교육적 활동이라니요? 사실, 동의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코칭의 주된 당사자들, 즉 코치와 선수들을 살짝만 살펴보아도 곧바로 드러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운동선수와 코치감독들이 오성이 충만한 전인들이라고 바로 인정하기가 어려운 것이 쓰라린 현실입니다.

지난 2000년 이후 점점 증가하는 선수폭행, 승부조작, 약물복용, 음주도박 등의 뉴스는 선수와 코치가 전인성을 온전하게 갖춘 모범사례라고 주장하기 힘들게 합니다. 평생 코칭을 받고 코칭을 하는 일만 해온 이들인데도, 이들을 볼 적에는 코칭이 체육전인교육의 본보기 활동이라고 힘주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한쪽 주먹이 유별나게 큰 주먹대장 만화의 주인공처럼, 오성중에서 체성만이 비정상적으로 커진 사람들이지요. 코칭은 바로 이 체성의 주먹을 비대하게 만드는 조처에 불과하고요. 일반인은 물론, 체육인들은 코칭을 이렇게 간주해왔습니다. 즉, “코칭은 운동(스포츠)을 잘하도록 만드는 특별한 기술이다. 체성을 다루며 완성한다. 때에 따라서는 스포츠맨십을 통해서 덕성을 함양하는 데에 공헌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대략 이런 정도에 그치는 코칭을, 전인을 완성하는 교육활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는 말입니다.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과 현실에서는 이런 수준의 코칭이 대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뿐더러, 최고 수준의 코칭도 아닙니다. 코칭의 이상적 수준, 올바른 코칭의 제대로 된 모습은 지속적으로, 혹은 자주 목격되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루어져 왔으며 지금도 실천되는 중입니다. 다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단속적으로 실천될 뿐입니다. 가끔이지만 TV 중계에서도 볼 수 있고, 학교 운동장에서도 목격되며, 동네 체육관에서도 발견됩니다.

코칭은 원래 그러한 종류의 활동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의 가치를 한정 짓고, 그 수준의 가치를 구현하는 정도로만 활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때, 온달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 마을의 바보에 불과했습니다. 평강공주의 발견과 인정과 지지로 인해서 고구려를 구하는 대장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바보 온달에 불과한 코칭이지만, 평강공주를 만나면 언제라도 온달 장군으로의 환골탈태가 가능한 것입니다. 코칭은, 그것을 단순히 운동기술습득 또는 게임전략발휘로 볼 것인지, 아니면 체육전인교육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그 잠재력이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선택은, 물론 우리의 몫이겠지요.

트레이닝을 넘어 호울링으로

저는 코칭을 이렇게 정의해봅니다. “코칭은 선수에게 운동을 지도하는 총체적 과정이다. 온전한 운동을 온전한 방식으로 가르침으로써 온전한 사람(온전한 스포츠 퍼슨)으로 성숙하도록 돕는 노력이다. 표층적으로는, 개별 운동을 완벽하게 체득할 수 있도록 전수하는 일이다. 심층적으로는, 운동을 온전하게 체험함으로써 스스로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온전한 사람, 온전한 운동, 온전한 방식, 온전한 체험 등의 표현들이 생소합니다(이후에 이어지는 연재들에서 조금씩 더 자세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코칭을(트레이닝이 아니라) ‘호울링(Wholing)’이라고 부릅니다. ‘온전한 운동을 체험하도록 해 온전한 사람으로 되어가도록 하는 노력’이라는 뜻입니다.

코치와 학생들

앞에서 사람이 가진 5가지 본성(체성, 지성, 감성, 덕성, 영성)이 온전하게 된 상태를 전인이라고 했습니다. 전인은 다름 아니라 ‘전인성(Wholeness)’이라는 총체적 온전함을 지니게 되는 상태의 사람을 말합니다. 호울링은 홀니스를 되찾도록 해주는 활동이라는 신조어입니다. 단순히 특정한 신체적, 기능적 동작 수행을 완벽하게 해주는 노력으로서의 트레이닝(훈련, 단련)에 대비되는 표현입니다. 코칭은 트레이닝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호울링(수련,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온달이 동네 놀림거리에서 국가최고장수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만든 힘도 바로 이러한 인식의 변화, 관점의 전환으로 가능했을 겁니다. 이런 이해, 즉 일종의 자기충족적 확신이 없었다면, 온달이는 그저 동네 건달로 평생을 허송세월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 확신은 평강공주에게서 온 것이지요. 선수 온달에게 평강공주는 최고의 코치였던 것입니다.

‘운동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이제 한국사람, 아니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지구상에 운동을 못 하는 운맹자보다도, 글을 모르는 문맹자가 더 많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코칭이란 바로 사람을 사람으로서 특징지어주는 결정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호모 코칭쿠스?). 그런데, 이 소중한 인간적 노력이 단지 운동기술을 가르치고 시합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그 노력은 2% 부족한 노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2%(마치 인간과 유인원을 구분지어 주듯이 중요한)는 결정적 2%입니다.

전인성 회복으로써의 코칭

오래전, 요한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용어를 우리에게 선물했습니다. 인간의 문화와 문명은 삶의 즉각적 필요를 넘어선 그 지점에서 인간이 추구한 욕망과 열망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욕망과 열망은 ‘유희적인 것’이었지요. 배불리 먹고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진선미라고 부를 수 있는 이상들을 추구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놀이는 단순한 놀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동물들도 단순한 놀이는 모두 즐길 줄 압니다. 호모 루덴스가 간절히 원했던 놀이는(물론 단순한 수준의 놀이도 포함하지만) 그 이상으로 문명과 문화로 성장한 수준의 놀이입니다. 스포츠 지도하기는 ‘게임 능력 기르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스포츠문화 만들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코칭이란 우리를, 호이징가의 의미에서 놀이하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활동입니다. 트레이닝이 아니라 호울링으로서의 코칭은 더욱 그러합니다. 단순한 게임과 경쟁 활동으로 즉각적 쾌감 체험과 흥분 체감에 만족하지 않는 것, 솟아오르는 아드레날린 분비로 찰나적인 플로우 맛보기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코치는 선수들에게(농구, 배구, 축구, 수영, 테니스, 스케이팅 등) 스포츠를 가르칠 때, 이 상태와 이 수준만을 지향하도록, 또는 여기에만 머물도록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트레이닝 코칭보다는 호울링 코칭이 온전한 코칭입니다. 코칭은 사람의 전인성을 회복시켜주도록 돕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호울링 코칭을 펼치는 코치는 트레이너를 넘어서 호울러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최의창 교수 사진

최의창 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서 일했다. 건국대학교에서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후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로 옮겨 체육교사 및 스포츠전문인의 양성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가지 않은 길 1, 2, 3』, 『코칭이란 무엇인가』, 『인문적 체육교육과 하나로 수업』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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