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인문적 코칭이란 어떤 코칭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인문적 코칭이란 운동내용이 인문화되는 코칭, 운동체험이 인문화되는 코칭, 그리고 운동환경이 인문화되는 코칭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쓸데없이 인문적으로 코칭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인문적 코칭이 어떠한 쓸모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문학(인문지)의 쓸모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상당히 많은 홍보와 증명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최근 국내의 한 철학자는 다섯 가지의 쓸모를 설명해서 알려주고 있는데요, 가장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일류기업들에서 왜 인문학에 대하여 높은 점수를 주며 가치있게 생각하는지 명료하게 알려줍니다. 그 다섯 가지는 ‘고상함과 품격, 윤리와 도덕성, 인간 중심의 관점과 타인에 대한 이해, 창의성과 콘텐츠 응용력, 그리고 비판적 사고와 표현력’입니다.
고상함과 품격은 기업과 제품의 격을 높여줍니다. 윤리와 도덕성은 기업의 도덕성을 높여 소비자의 인식을 좋게 만들며 기업 내부적으로도 신뢰와 협동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관점과 타인에 대한 이해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창의성과 콘텐츠 응용력은 창의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인문적 콘텐츠를 응용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판적 사고와 표현력은 기업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도와주며 논리적인 말과 글을 사용하여 설득력을 높이는 소통을 가능케 합니다. 스포츠 코칭의 맥락에서 이 다섯 가지의 쓸모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상품에는 질 또는 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질이나 저품격, 또는 양질이나 고품격의 가치가 부여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값어치가 매겨집니다. 스포츠 플레이도 역시 품평됩니다. 품격 높은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저질스러운 플레이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핵주먹’이라 불리던 전 헤비급 권투 세계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이 곧바로 떠오릅니다. 주먹은 역사상 가장 세었을지 모르지만, 권투인 중 가장 저열한 시합을 펼치는 선수로 낙인찍혀졌습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경기중 이반다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어 버리는 상상초월의 행동을 보였죠. 타이슨의 정반대편에 5개 체급에서 세계 타이틀을 따낸 1970~80년대 세계 최고의 복싱선수 슈거레이 레너드가 있습니다. 그는 멋진 외모와 함께 깔끔하고 반칙없는 복싱 스타일로 지금까지도 팬들로부터 존중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기술을 펼치는 장면에 환호합니다.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발휘하여 경기를 펼쳐내는 선수에게 열광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퀄리티’ 즉 질(격)이 덧붙여졌을 때에 온전히 존중해줍니다. 품질의 격(품격)과 위(품위)는 그냥 생겨나지 않습니다. 기예에 지혜와 심성이 덧붙여져야 합니다. 일본 검도에서 강조하는 기심체일치(氣心體一致)는 바로 이러한 상태를 추구하는 하나의 좋은 예를 보여줍니다. 인문적 지혜는 진선미를 추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무엇이 가치롭고,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스포츠 코칭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기술과 정신이지요. 예를 들어, 농구코치는 기술만 전달해서는 안되며, 농구정신도 함께 전수하여야 온전한 농구인으로서 선수들을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스포츠맨십’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농구 정신을 구체화한 것입니다.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성격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거의 모든 종목에서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많은 행위가 있었죠. 도박사들과 결탁하여 일확천금을 꾀하며 승부를 조작합니다. 감독과 코치는 선수를, 선배선수는 후배선수에게 (언어적, 물리적, 성적) 폭력을 가합니다. 승리와 계약에 대한 부담과 욕심 때문에 약물 남용과 중독에 빠져듭니다. 금전적 대가를 받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대학입학이나 팀입단을 도모합니다. 프로팀이나 학교팀이나 다소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스포츠인권센터나 클린신고센터 등이 설치되어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한국의 스포츠인들은 오랫동안 정상적인 학교 교육의 과정을 받지 않고 운동에만 몰두하는 시스템에 노출됐습니다. 학교 졸업 후에도 재교육의 기회가 없었고 절실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성장 과정 속에서 윤리와 도덕성을 강조하고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만 하는 스포츠인들에게 무리였을 수 있습니다. 스포츠 장면에서의 올바른 가치판단은, 일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의 학습을 바탕으로 한 인문적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교사, 의사, 간호사 등 사람을 직접적 서비스 대상으로 하는 전문직을 봉사전문직이라고 합니다. 스포츠코칭도 바로 같은 직역에 속하지요. 운동이라는 문화를 선수들에게 직접 면대면(面對面)으로 전수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린 유·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코칭상황이 많다는 점에서 교육자(교사)와 거의 흡사합니다.
코치나 감독은 선수가 아직 어리지만, 여전히 한 명의 독립된 인간이며 성장해야 하는 어린 사람임을 명확히 인식하여야만 하지요. 부모 같은 마음에서 강한 방식으로 바로잡아주고 싶기도 하지요. 하지만, 선수는 엄연히 자신의 법적 자녀가 아니죠. 아무리 어리더라도 선수는 개성을 지닌 인격체임을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데,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그러한 원칙을 더욱 강하게 적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승리나 우승을 위한 수단적 존재로서 선수들을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농구도 축구도 결국 선수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수를 스포츠(또는 감독 자신)보다 근본적으로 우선시 하는 ‘선수중심 코칭철학’(athlete-centered coaching)은 현대의 지배적인 스포츠코칭론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적 철학, 타인은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철학, 역사, 문학같은 인문적 교육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공자와 예수가 강조한 우리 삶의 황금률(타인이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대로 타인에게 해줄 것)을 온전하게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감독중심 코칭철학과 지시중심 코칭방식으로 코치받은 선수들의 단점이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율적이지 못하고 창의적이지 못합니다. 전개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감독의 명령에 가까운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좋지 못한 결과를 냈을 때 던져지는 추궁과 비난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동적이고 창의적이지 못하다.”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가해지는 평가일 것입니다. 감독과 코치의 경기경험에만 의지하여 훈련하고 준비하고 대처하기 때문입니다. 감독이 하늘과 같은 존재로서 군림하기 까닭입니다. 군대처럼 지시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전투에 패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기는 전쟁이 아니고 팀은 군대가 아니지요. 선수들이 로봇이나 모르모트가 아닌 이상, 전반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많은 것을 현장의 선수들에게 맡겼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함으로써 본인들이 만족스러운 경기를 펼치게 되지요.
선수들은 정기적 교육과 독서와 토론을 통해서 다양하고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와 자료가 코치와 감독의 이전 경험뿐이라면, 절대로 더 나은 생각, 새로운 생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선수들이 응용하며 창작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코치와 감독은 선수들의 자기교육 기회를 최대화 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특정 축구팀이나 감독이나 선수의 자서전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 새로운 전술과 기술을 수시로 개발하여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김으로써 그런 역량이 개발될 수 있습니다.
머리가 나쁘다거나 공부를 못한다는 등, 스포츠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통념이 있습니다. 특히, 깊이 생각하는 능력과 조리있게 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지적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운동에 온 정신과 모든 시간을 쏟아서 국어나 수학이나 과학공부에 쏟지 못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일반 학생들이 공부만 하느라고 운동을 선수처럼 못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는데 말이죠.
비판적 사고와 표현능력은 오로지 읽기, 말하기와 생각하기에 의존합니다. 폭넓고 다양한 독서와 침착하고 정리된 토론(그리고 글쓰기)의 훈련을 받는다면, 선수들도 우등생과 전혀 다를 바없는 사고기능과 표현역량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이른 시기에 은퇴하고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 외국의 선수들은 부지기수죠. 행정가나 정치가로 변신한 사람들도 많고요. 이것은 외국의 선수양성체계가 올바로 되어있고, 우리나라의 그것이 왜곡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한다면 많은 선수가 큰 문제없이 훌륭한 소양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감독과 코치들은 현재 주어진 훈련 상황과 기존의 스포츠 관행들이 모두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선수들이 이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비판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을 말과 글로 타인과 소통하고 전달할 수 있도록 함께 성장시켜주어야 합니다. 인문적 교육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예전에 독재자들의 사회통제를 위한 기본적인 우민화 정책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죠. 선수들이 본인이 하는 운동에 대해서 표피적으로만 알고 심층적으로 알지 못할 때만이 코치와 감독의 전횡이 가능합니다.
이렇듯, 인문적 지혜와 서사적 체험을 강조하는 인문적 코칭은 선수들로 하여금 스포츠 리터러시를 함양하여, 다섯 가지 쓸모를 가져다줍니다. 능소양은 물론이고, 지소양과 심소양이 두터워짐으로써 선수의 스포츠 플레이와 스포츠 라이프에 질적 변화가 생겨나게 됩니다. 호울 스포츠를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것들만이 아니라, 협동심, 자신감, 배려심 등등 다른 중요한 자질들도 함께 길러집니다.
최근 교육이나 역량개발 분야에서는 이런 자질들을 21세기 역량, 또는 소프트 스킬이라고 부릅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 사회를 살아가며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고, 그 변화를 리드하는데 핵심적이며 필수적인 자질이지요. 인문적 코칭은 스포츠 활동이 이러한 자질을 함께 길러주는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 되도록 만들어줍니다. 스포츠 코칭을 단순히 신체를 강건하게 하거나 기술을 숙달시켜 즐겁게 스트레스 해소하는 표피적 효과만을 얻는 훈련이나 지도를 넘어서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인문적 코칭은 스포츠 코칭이 선수의 전인적 변모를 이끄는 스포츠 교육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최의창 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서 일했다. 건국대학교에서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후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로 옮겨 체육교사 및 스포츠전문인의 양성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무부학장, 한국교육신문, 한국대학신문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스포츠교육학회 회장이다. 저서로는 『스포츠 리터러시』, 『가지 않은 길 1, 2, 3』, 『코칭이란 무엇인가』, 『인문적 체육교육과 하나로 수업』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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